'화이트하우스' – 동네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살던 쉐어하우스를 그렇게 불렀다. 지붕을 제외한 집 전체가 흰색이었기 때문이다. 이 집은 내가 살던 콥스하버 울굴가에서 뭐랄까, 유서 깊은(?) 워홀러들의 쉐어하우스였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워홀러들이 이 집을 거쳐 갔고, 개중에는 콥스하버를 잊지 못해 다시 화이트하우스로 돌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집 소개
화이트하우스는 1층집이지만 꽤 넓은 편이었다. 앞뒤로 마당이 넓었고, 방은 총 5개였다. 커플룸 2개에는 퀸사이즈 침대가 있었고, 2층 침대 2개가 놓인 남자 방과 여자 방이 각각 하나씩 있었다. 또 2층 침대 하나가 있는 방도 하나 더 있었다. 거실과 주방은 적당한 크기였고, 샤워룸이 딸린 화장실 하나와 변기가 딸린 세탁실이 있었다. 집 전체를 가득 채우면 총 14명이 살 수 있었지만, 보통 10명 정도가 함께 살았다.
처음 그 집에 들어갔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콥스하버에 갔던 4월은 아직 블루베리 시즌이 시작되기 전이라, 동네에 워홀러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지 않은 시기였다. 그 때문에 집에는 당시 미사토와 미카라는 여자인 일본 친구 두 명만 있었다. 집주인 아주머니와 함께 집을 들어가며 간단히 인사를 나눴지만, 짐을 풀고 거실로 나가기까지는 꽤 오랜 고민이 필요했다. 이전에 외국인과 개인적으로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었던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엄청 내성적인 I of I였다. 그래서 내가 아는 가장 외향적인 친구에게 보이스톡을 걸어, 어떻게 말을 걸면 좋을지 노하우를 얻은 뒤 어렵게 거실로 나갔다. 막상 다가가자 다들 너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하우스 메이트 소개
조금씩 하우스 메이트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키가 190cm는 되는 백인 친구가 들어왔다. 이름은 '타코타'. 일본 이름처럼 들려 특이했다. 그는 호주 로컬 오지 친구였는데, 나와 성격이 비슷해 금세 친해졌다. 술, 담배를 하지 않고 게임을 좋아했으며 무엇보다 선비of 선비였다. 서양 친구들이 성적으로 개방적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을 수 있지만, 타코타는 소소한 19금 농담조차 전혀 받아주지 않았다. 이따금씩 뒤에서 얘기할 일본친구들이 그런 장난을 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뜨곤 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곧 진중하고 바른 친구라는 점을 알게 되어 더 좋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인 친구(남자) 둘이 들어왔다. 그 둘의 이름은 마사토와 토르였다. 서핑을 정말 좋아하던 친구들이었다. 하루라도 서핑을 안나가는 날이 없었고, 토르는 서핑을 하기 위해서 호주를 왔다고 했었다. 둘다 덩치도 작고 까맣고 마른 전형적인 일본친구들이었는데 장난기도 많고 정말 유쾌한 친구들이었다. 유독 한가지 문제점은 19금 드립과 장난을 난무한다는 점이었는데, 필자또한 선비였기떄문에 정신히 아득해질거같은 수준들도 많았다. 그 둘을 보면서 아 이게 성진국인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또 이틀뒤에는 프랑스 백인친구가 한명 들어왔다. 그 친구의 이름은 장 호조 였는데. 처음왔을때는 영어를 정말 못했었다. 숫자도 10을 넘어가면 제대로 세지못해서 숫자 31은 써리원이 아니라 쓰리. 텐. 원 이런식으로 표현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친구는 엄청나게 파티를 좋아하는 외향인, E 그 자체였다. 동네에 파티가 있다고 하면 퇴근 후 아무리 몸이 고되더라도 집밖을 나갔다. 어느날은 거실에서 몸이 너무 힘들다며 나한테 하소연 하길래, 그러면 놀러나가지말고 좀 집에서 쉬어라라고 했더니. '그럴순없다. 친구들이 부르니 나가야 된다' 며 그 지친몸을 이끌고 또 새벽까지 놀고 들어왔다. 영어를 못하지만 이렇게 계속 파티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니 영어는 처음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늘었으며, 거기다 술에 취하면 거의 네이티브 스피커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했다. 난 그때 술에 취해서 영어를 자유자재로 내뱉는 장호조를 보고 깨달았다. 아 역시 영어는 자신감이구나.
이렇게 처음에 말했던 미사토(미카는 마사토와 토르가 들어온뒤 곧바로 캐나다로 떠났다)와 타코타, 마사토, 토르, 장호조 이렇게 다섯명이서 원년멤버(?)처럼 이 화이트하우스에서 거의 1년간 같이 살았다. 물론 그 1년동안 말레이시아에서온 나이 많으신 부부들,멘디,조이, 홍콩에서 온 팬시 등 다른 친구들도 있었지만 다른친구들은 3~4개월 정도만 살고 떠나간 반면 이 원년멤버(?)친구들은 화이트하우스에서 계속같이 근 1년간 함께 살았고 너무 행복했었고 친했었기 때문에 이들만 소개했다.
화이트하우스 이야기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었던, 도파민이 최대로 많이 나왔던 시기가 이 화이트하우스에서 살던 약 1년동안이다. 그 시간들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도 호주에서 머물고 있는 중이다. 화이트하우스에서 사는 일상은 하루하루가 뭐랄까 외국영화 속 시트콤에서 사는 기분이었다. 일단 대화를 항상 영어로 주고받았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사는 기분이었으며 전 세계에서 온 혈기왕성한 젊은 친구들과 살고 교류하다보니 매일매일 새로운 재밌고 흥분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슬픈거나 기분나쁜일은 거의 없었다. 굳이 꼽자면 간간히 동네 어린 중학생쯤 되는 꼬마들이 시비를 걸때가 있었는데 어느날 집앞에서 대놓고 마사토랑 토르에게 담배달라고 시비걸다가 타코타한테 걸려서 뚜들겨 맞을뻔 한 일 이후로 그런 상황도 더이상 생기지 않았다. 이제 꽤 오래된 기억들이라 많이 기억나지 않지만 개중에 기억나는 몇개는 다음 포스팅때 자세하게 이야기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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