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 내 삶을 송두리채 바꿔 놓았다.

    - 호주 워홀의 시작 -

     2017년 말, 나는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의경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전역을 앞두고 복학하기 전에 1년 정도 어학연수를 가볼까 고민했는데, 집 형편이 여유롭지 않아서 최대한 가성비 있게 다녀오려 했다. 그래서 필리핀 3개월, 뉴질랜드 9개월 코스로 마음을 정해놨는데, 그때 고향의 은사님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추천해 주셨다. 뉴사우스웨일즈 콥스하버라는 지역에 은사님 친구 가족이 한인 식당을 운영 중이라, 처음 워홀을 시작할 때 여러모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마침 부모님 돈으로 어학연수를 가는 게 마음에 부담되던 차에, 워킹홀리데이는 딱 좋은 대안이었다. (사실 나는 '꿀빨' 의경이었기 때문에 배달음식 시켜 먹고, 편의점도 자주 들르고, 외출할 때마다 맛있는 걸 사 먹느라 모아둔 돈이 하나도 없었다.) 전역 후 4개월 동안 IELTS 학원을 다니며 나름 준비를 하고 콥스하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콥스하버 행 비행기. 작다.

    - 블루베리의 고장 콥스하버 -

     

     내 워홀의 목적은 분명했다. 돈은 벌면 좋고, 안 벌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으니 영어 실력 쌓고 인생 경험 쌓으면서 조금 더 성숙해지면 충분했다. 아직 어리고,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까.

     

    인천공항에서 중국 청두 공항을 경유해 시드니에 도착해 하루를 묵고, 그 다음 날 콥스하버로 향했다. 콥스하버는 작은 도시였다. 마을이라고 하기엔 크고, 도시라고 하기엔 작았다. 그리고 나는 콥스하버 옆 '울굴가'라는 바닷가 마을에서 내 워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콥스하버는 워홀러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지역이었다. 블루베리 농장이 많아 세컨비자(호주 워홀 비자를 연장할 때 보통 농축산업 분야에서 일정 기간 일해야 함)를 따려는 워홀러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사실 나는 그런 이유로 간 건 아니지만, 이 지역에서 영어를 못하는 아시아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블루베리 관련 업종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도 첫 일은 블루베리 팜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인도팜의 모습

     

     나는 한인 식당 사모님 소개로 대만인 컨트랙터에 속해 인도 블루베리 팜에서 일하게 됐다. (여기서 컨트랙터란 농장주와 우리 같은 워홀러를 연결하고 관리하는 사람이다.) 사실 한인 컨트랙터도 많았지만, 사모님은 한인 컨트랙터들을 싫어했다. 나도 여러 가지를 보고 들으면서 그들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

     

     블루베리 따는 일 자체는 막 힘들지 않았다. 군대의 통제된 환경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모든 게 즐거웠던 것도 같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었다. 하루 10시간씩 일해도 호주 달러 100불이 안 됐고, 시간당 계산해보면 한국 최저시급보다도 낮았다. 돈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물론 얼마지나지 않아 일을 옮겼지만 블루베리 팜에서 일한 첫 두 달은 꽤 우울하게 보냈다.

     

     

    - 화이트 하우스 -

     

     이제 내가 살았던 쉐어하우스 얘기를 해보자. 내가 워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곳이다. 내가 상상했던 호주 워홀의 모든 것을 이 집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살던 쉐어하우스는 '화이트 하우스'라고 불렸다

    지붕 빼고는 다 흰색이다.

     

     집 전체가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그렇게 불렸다. 이 집은 콥스하버 워홀러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다. 내가 살던 울굴가는 콥스하버에서 워홀러들이 가장 많이 사는 마을이었고, 이 곳 워홀러 커뮤니티에서 우리 집은 '퍼플 하우스'와 함께 양대 산맥이었다. (참고로 퍼플 하우스는 집이 보라색으로 칠해져 있다.) 위치도 좋았고, 파티가 자주 열리는 백패커스와 바닷가가 가까웠다. 집이 워낙 커서 워홀러 10명이 함께 살았는데, 그 10명이 각기 다른 친구들을 우르르 데려오다 보니 다 같이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고, 동네 워홀러들 끼리는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가 되었다.

     

     사람 많고 복닥거리는 집에서 불편하지 않았냐고? 의외로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참고로 나는 INFP에다 완전 집돌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난 이 집에 살 수 없고 진작 도망쳐 나왔어야 했겠지만, 오히려 이곳에서의 9개월이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내 워홀생활은 블루베리와 화이트하우스 이 두가지 요소로 설명할 수 있을 것같다. 다음 포스팅에서 상세하게 풀어보겠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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